‘가상’ 기술이 만드는 세상의 변화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면 우리는 “이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편리해질까?” 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가집니다. 19세기 자동차 기술의 탄생은 우리에게 이동의 자유를 가져다줬고, 20세기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이 기계와도 소통할 수 있게 했죠. 그러나 최근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가상’ 기술들은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VR, AR, 아바타 기술은 인간의 경험 공간을 가상 세계로 넓혀주었습니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투자 시장의 논란을 만들고 있는 ‘가상’화폐와 작년 한해 열풍이 분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가상’자산도 그렇습니다. ‘가상’의 주요 기술들은 편리함의 제공을 넘어 인류의 경제 활동과 투자의 방식조차 바꿔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상’ 기술들이 만들고 있는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인간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메타버스 혁명

얼마 전 미국의 유명한 알앤비 가수 존 레전드(John Legend)는 가상현실 콘서트 플랫폼 ‘웨이브(Wave)’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온라인 콘서트라고 하면,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 혹은 실시간으로 공연을 중계하는 형태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존 레전드의 공연은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열렸습니다. 녹화된 영상도 아니었고, 공연의 실황 중계도 아니었습니다.

존 레전드의 아바타가 가상공간에서 공연하고, 관객의 아바타들이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존 레전드의 몸에는 모션 캡처(Motion Capture)라고 하는 장비가 부착되어 있었고, 존 레전드의 움직임을 똑같이 아바타가 구현했죠. 관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플랫폼에 접속해,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한 채 각자의 아바타가 되어 가상 콘서트홀에 입장했고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관객과 가수는 물리적·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으나, 아바타들끼리 가상공간에서 만나 인간의 소통을 대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떠한 지연도 불편함도 없습니다. 실제가 아닌 가짜이지만, 실제와 유사하게 느껴지는 실감 경험(Immersive Experience)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 경험의 확장을 만들어 냅니다.

최근 VR·AR 기술 등 가상세계를 활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가상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메타버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가상세계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상세계의 창조가 완성된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입니다. 학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기술 개념으로 CPS(Cyber Physical System; 가상물리시스템)를 꼽습니다.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상호작용: CPS의 완성  (출처: 메타 리치의 시대 (2022, 김상윤))
3차 산업혁명이 물리세계의 정보를 가상세계로 옮겨 놓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에 집중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세계를 물리세계로 회귀시키는 아날로그화(Analogation) 또는 가상세계와 물리세계를 연결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상세계와 물리세계가 동일시되기도 하고, 이를 넘어 오히려 가상세계가 물리세계를 지배하기도 합니다.

구글 웨이모 자율주행 시스템의 경우 자율주행차가 갖고 있는 라이다(Lidar)라는 센서를 통해 현실세계의 장애물과 거리 모습, 신호등을 인식합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이를 디지털화된 데이터로 처리해 가상공간에 구현하고 이를 자율주행에 활용하죠. 정확히 말하면,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현실세계를 주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똑같이 복제한 가상공간을 주행하고 있고, 이것이 결국 우리 인간이 사는 현실세계에서의 움직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실세계를 똑같이 복제한 가상공간을 주행하는 자율주행 (출처: waymo 공식 홈페이지)
4차 산업혁명, 가상물리시스템,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 등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사용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결국 맥락은 비슷합니다. 디지털 기술로 가상세계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가상세계와 물리세계가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거나, 혹은 아바타를 이용해 우리가 직접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것 모두 같은 맥락의 변화입니다.

가상경제 시대가 열릴까?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의 미래 모습으로 공감하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장면을 떠올려봅시다. 주인공 웨이드 왓츠는 오아시스라는 메타버스 세상에서 각종 노동의 대가로 코인을 받습니다.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결제수단 또한 가상 화폐인데요. 주인공은 결국 자동차 경주에서 승리하여 세 개의 열쇠를 얻어 인류를 구하는데, 아마 이 열쇠는 NFT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NFT는 ‘디지털 콘텐츠의 고유 정보를 담은 기록장(텍스트 파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부동산의 소유와 거래 정보를 담은 등기권리증과 유사합니다. 또한 NFT는 블록체인 상에 기록되기 때문에 위조나 변조가 불가능합니다. 즉, 해당 디지털 콘텐츠의 진품 여부 혹은 소유권을 영구적으로 판별해주는 ‘디지털 인증서’입니다. NFT와 가상 화폐 모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했다는 것은 공통적입니다. 블록체인기술은 디지털 정보(콘텐츠)에 소유권을 부여하여 자산으로 축적하거나, 거래하거나, 화폐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죠.

다시 영화 속 얘기로 돌아와서, 미래 메타버스 가상세계에서 펼쳐질 다양한 경제 활동과 부의 창출 방식은 ‘가상’의 화폐와 자산을 활용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는 이를 가상경제라 부르고 있습니다.

해외 주요국과 연구기관은 가상경제의 개념을 속속 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은행 산하 InfoDev는 2011년 [가상경제의 기술지도(Knowledge map of Virtual Economy)]'라는 보고서를 통해 가상경제를 ‘가상 상품, 가상 화폐, 가상 노동이 창출하는 경제체제’로 정의했습니다. 가상경제와 유사한 개념인 실감경제 (Immersive Economy)를 가장 먼저 정책에 담은 국가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2018년 [영국의 실감경제 (The Immersive Economy in the UK)]라는 보고서를 통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실감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 문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체제’를 실감경제로 정의했습니다. 실감경제와 가상경제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결국 가상경제라는 것은 메타버스 세계의 새로운 경제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의 경험과 소통, 기업의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여기에 수반되는 다양한 거래와 경제 활동이 가상 화폐와 가상 자산의 형태로 확산될 어느 시점쯤, 우리는 ‘가상경제’를 익숙하게 언급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상윤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연구교수
국가혁신성장동력 기획위원회 전문위원
국가과학기술기본계획 미래성장동력분과 위원
산업통상자원 산학연 네트워크 포럼 산업정책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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