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대중의 관심 증가 → 해당 분야 내 두각을 드러내는 브랜드 등장 →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상승 → 브랜드의 성장 및 유사 브랜드들의 등장 → 시장 전반의 질적·양적 성장
문득 이 양상이 IT 기술의 대중화 과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본다면 IT 기술은 위 과정에서 ‘특정 분야’이기도 하고, ‘브랜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IT 기술을 ‘특정 분야’로 본다면, 당연히 대중의 니즈가 가장 큰 기술 분야가 주목받게 될 것이고, 해당 기술을 활용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각자의 브랜드를 론칭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IT 기술을 ‘브랜드’에 대입해 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기술들 중 대중과 기업의 선택을 받는 특정 IT 기술은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어 인지도와 영향력을 키우게 되겠죠. 그리고 이 광의의 브랜드는 자신을 활용한 새로운 IT 기기나 솔루션 브랜드들이 등장하는 기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Wi-Fi의 대중화에 이를 대입해 볼까요. Wi-Fi라는 특정 기술 분야가 주목을 받았고, 기업들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공유기, 미러링 등 수많은 유·무형의 상품을 각자의 브랜드로 선보이며 대중화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Wi-Fi 기술은 더욱 고도화되었고, 이를 응용한 다른 IT 기술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Wi-Fi는 그 자체로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번거롭게 선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인터넷을 활용하게 해주는’ 특성을 갖춘 한결 같은 브랜드인 셈이죠. 그런가 하면 LG전자가 2017년에 론칭한 인공지능 기술 브랜드 ‘LG ThinQ’는 무형의 IT 기술을 직접적으로 브랜딩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브랜드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죠. 전반적인 소득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는 브랜드를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사치였고, 그랬기에 저렴한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미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브랜드를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IT 기술의 흐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IT와 DX의 개념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IT 기술을 우리를 둘러싼 브랜드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또한 브랜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의미가 있는 것. 따라서 브랜딩의 관점으로 IT 트렌드를 짚어본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즉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기술들이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2023년에는 어떤 IT 트렌드가 브랜드가 되어 우리의 삶을 둘러싸게 될까요?
지난 해 11월 2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이 주관한 콘텐츠 피칭 플랫폼 ‘케이녹(KNock) 데모데이 2022’가 열렸습니다. 케이녹은 콘진원의 대표 투자유치 지원 프로그램으로, 6개 투자사로 구성된 ‘케이녹 파트너스’가 육성기업 10개 사와 연결되어 약 12주 동안 육성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특히, 데모데이에서는 팀 역량, 콘텐츠 서비스의 우수성, 시장성, 성장성 등을 기반으로 우수 기업을 선정했는데요. 상위 3개 상 가운데 대상(게임 <더 데블 위딘 삿갓>)을 제외한 최우수상과 우수상 모두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수상했습니다. 최우수상은 MZ세대를 위해 다양한 즐길거리를 소개하며 이를 오프라인 소비와 연결하는 ‘데이트팝’, ‘나들이팝’의 텐핑거스가, 우수상은 라이브 커머스 등 브랜드를 위한 라이브 콘텐츠 서비스 파트너인 라라스테이션이 받았죠. 수년 전부터 이미 레드오션이라 일컬어지던 O2O 플랫폼의 약진을 재차 목격한 셈인데요.
두 서비스는 결과는 같을지언정 팬데믹의 영향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팬데믹 기간동안 외출을 자제했던 심리가 회복되면서 텐핑거스는 다시 성장세에 접어들 수 있었고, 반대로 팬데믹 기간동안 더욱 흥했던 라이브 콘텐츠는 팬데믹 이후에도 큰 타격 없이 더 큰 성장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한 곳은 못했던 활동에 대한 보상심리로, 다른 한 곳은 더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잘 이용해 자리 잡은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그 공통분모에는 코로나19를 발판 삼아 더 강해진 O2O라는 서비스의 형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O2O 서비스에 익숙합니다. 음식 배달, 세탁 서비스, 각종 구독 등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었죠. 그럼에도 O2O 분야에는 여전히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O2O 서비스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난 해부터 애플의 애플페이가 국내에도 도입될 것이라는 소식이 이슈입니다. 그런가 하면 삼성전자는 지난 해 2019년 이후 3년만에 삼성페이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견제의 의미가 담긴 것일 수 있지만, 단독 광고를 집행할 만큼 간편결제 기술의 영향력을 인정한 것이겠죠. 2022년 11월 기준 국내 삼성페이 사용자는 약 1577만 명. [1] 이미 전세계 5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한 애플페이가 국내에 출시되면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간편결제 자체가 브랜드가 된 셈이죠. 인간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존재입니다. 이미 되돌아 갈 수 없는 간편함을 맛보게 해준 간편결제 기술이 신용카드, 교통카드, 디지털 키, 디지털 자산 조회 등을 넘어 또 어떤 기능을 삼킬지 궁금해집니다.
팬데믹 이후의 빅테크 트렌드를 짚은 도서 <모바일 미래보고서 2023>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이미 화두에 올라 있지만, 여전히 핵심적으로 거론되는 ‘모빌리티’와 ‘디지털 헬스케어’입니다. 모빌리티는 이미 많은 분들이 경험했거나 기대하고 있는, 비교적 익숙한 분야죠. 근 몇 년간 내연기관 자동차는 전기차로, 인간에 의한 운전은 자율주행으로 기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 왔고, 이 흐름은 2023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전통적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IT 기업들이 이 흐름에 동참하는 움직임 역시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모빌리티는 소비자들의 경험뿐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가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참고로 BMW는 올해 CES에서 디지털 전기차 i Vision Dee 콘셉트카를 공개하면서 흥미로운 영상도 함께 선보였는데요. 미래의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지, 인간과 AI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상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역시 빠르고 다각적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건강이나 운동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디바이스 영역은 스마트 워치를 필두로 이미 시장에 안착했고, 건강 상태를 체크하거나 건강 검진을 예약할 수 있는 헬스케어 앱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원격의료와 처방약 배달 등 온라인 기반의 기술과 서비스도 점차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미 굿닥, 똑닥 등의 테크기업발 헬스케어 앱의 발전은 물론, NH헬스케어 등 전통 기업의 새로운 진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400억 원을 들여 비대면 진료 기술을 기발한다고 밝히기도 했죠.[2] 사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봐야 하는 분야입니다. 우리나라가 점차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은 자명하고,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분야가 바로 디지털 헬스케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다른 분야에 비해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을 수 있지만, 꾸준한 전진을 보여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랜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을 만들 때나, 고객을 대할 때나 가식 없는 진정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하는 것. 이것이 오래 지속 가능한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비결이라 봅니다. 기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좋은 기술이 변치 않고 계속된다면 좋은 브랜드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그들로 인해 탄생한 원자폭탄의 폐해를 늘 후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23년을 수놓을 생활 속 IT 기술들은 늘 선하게 남아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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